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군의 아들 (문단 편집) == 특징 == 여러모로 한국 영화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영화이다. 첫째, 주연과 조연 배우 대부분을 오디션을 통해 무명 배우들을 새로 뽑아 흥행시킨 덕에 한국 영화배우들의 세대 교체[* 그때나 지금이나 스타급 배우들을 돌려쓰는 현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나마 저 당시에는 진짜 주연급으로 대접할 배우층이 아주 얇았다.][* 순수 오디션으로 선발된 '장군의 아들' 출연진을 시작으로 90년대 중반부엔 TV드라마에서 활동하던 톱 탤런트들이 대거 충무로로 진출했으며, 90년대 후반부터 연극판을 주름잡던 배우들이 충무로로 진출했다. 제작진들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인재로 물갈이가 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영화계 인사들이 자기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뻘짓을 서슴지 않다가 '[[애니깽 사태]]’라는, 2000년대 현재에도 한국영화계 최악의 스캔들로 기억되는 큰 사건을 저질러 대중들의 거센 비난을 받게된다.] 를 이뤄냈다. [[박상민(배우)|박상민]], [[신현준]][* 1,500여명의 지원자 중에서 하야시 역할을 지원한 유일한 배우였다.], [[이일재]], [[김승우]], [[김형일(배우)|김형일]][* 같은 성우 동기이자 함께 출연했던 [[민응식]] 성우가 [[홍쇼]]에서 [[https://youtu.be/UJJo_ZCk9zs?si=s7Fg2g2lJgYWwmEY|말하기를,]] 당시 CM성우라는 한정된 역할밖에 하지 못하게 되자 연기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던 중 신문에 장군의 아들 오디션을 본다는 광고를 보고 함께 해보자고 하면서 준비했다고 하였다.] 같은 배우들은 대부분 90년대 후반까지 영화계에서 주요 배우들로서 입지가 상당했으며, 그 이후에도 연예계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신현준은 현재 배우로썬 은퇴했다.] [[송채환]]역으로 나온 권소연은 아예 예명을 이 영화를 계기로 송채환으로 바꿨을 정도.[* 영화 배역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아예 예명으로 삼는 경우는 이외에도 많이 있다. [[용쟁호투]]의 볼로 양이라든가,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조상구]]라든가....] 그 중에서 [[하야시]]의 나이는 30대 초중반으로 설정되었는데, 오디션에 합격한 신현준의 나이는 당시 갓 스무살이었다. 또한 실제 일본인 배우로 착각했다는 반응도 많았지만, [[연세대|명문대]]에 재학중인 대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충무로 영화사에서 그를 캐스팅하기위해 신상정보를 캐려고까지 했었다.[* 2탄에서 하야시의 헤어스타일이 스포츠형으로 아주 짧게 나왔는데, 이유는 집안 식구들 몰래 오디션을 보고 학교 수업까지 빠지면서 영화 촬영을 하다가 우연히 TV연예프로에 촬영현장이 공개되어 이를 본 아버지가 분노해서 촬영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신현준을 보고선 가위로 머리를 밀어버렸다고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해당 학교로 많은 기레기들이 몰린 바람에 연예계로 데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과 교수들이 회의를 열어 퇴학시키려고까지 했다. 결국 학사경고를 먹어 1년 유급하여 공부 열심히 해서 간신히 졸업했다는 후문. 당시에도 명문대학교 학생이 연예계로 많이 데뷔했었지만 이 경우에는 '깡패영화'에 그것도 '일본인'으로 출연하는데다, 바로 이전에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 '꼭지딴'에서 마약하는 [[인신매매]]범으로 나오니...학교에선 괘씸했을 듯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내 일본인 유학생들은 '일본인들 중에 저렇게 키크고 잘 생긴 사람 없다'고 하면서 잘 봐줬다는 후문.][* 아이러니하게도 20여년 후에 출연한 [[각시탈(드라마)|각시탈]]이라는 드라마에서 신현준은 항일운동가 [[이강산(각시탈)|이강산]]역할로 출연했다(응?)] 이 외에도 [[조재현]], [[차인표]]가 이 영화의 오디션에 응시하려고 했었다고도 하며, 배우 [[황정민]][* 1탄에서 술집 종업원으로 "저기...다른사람은 안될까요?"하는 한마디 하는 짧은 대사와 함께 잠깐 출연한다...만은 당시 연기력이 초보 수준이었던지라 '''목소리 연기를 너무 못해서''', 편집과정에서 다른 사람 목소리를 씌웠다고 한다. 황정민 본인은 자신이 그때 연기를 막 시작하던 시기라 긴장해서 그랬다고 후에 밝혔다.], 개그맨 [[김진수(코미디언)|김진수]][* 2탄 후반부에 하야시 패거리와 싸우는 씬에서 교복을 입고 출연한다]도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임권택 감독 본인도 2탄 초반부에 하야시의 운전기사 역할로 잠깐 출연한다.] 무술감독을 맡았던 [[정두홍]]도 1탄[* 후반부 김두한 패거리와 싸우는 혼마찌패 무리들 중 한 명]과 2탄에서[* 역시 후반부에 괴롭힘 당하다 한 방 먹여주는 촌놈으로 나온다.] 잠깐 출연했다. 그리고 박상민, 신현준, 이일재는 이 영화로 국내 영화제의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둘째, 당시 액션씬 촬영 노하우나 스턴트 배우 등에 대한 개념과 인식도 드물었는데 이후 그 분야의 교과서적인 영화로 자리잡고 해당분야 인력들에게 경험을 제공했다. 2편에서 뜨내기 총각으로 출연했던 [[정두홍]]은 지금도 대한민국 영화에서 격투, 액션씬의 제 1인자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당시 장군의 아들 시리즈의 무술감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두홍이 아니라 김영모였다. 1980년대 초~중반생들에게는 제법 알려진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 실사판에서 주인공인 류를 연기했다. 정두홍은 당시 신인이라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고 주인공 김두한의 액션대역과 전체적인 액션연기는 김영모가 담당했다. 임권택은 주먹패를 소재로 한 영화인만큼 액션에도 큰 공을 들여야함을 잘 알고있었는데 김영모 이전의 액션감독은 홍콩 권격영화같은 딱딱한 동작의 액션이었기에 임권택은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싶었다. 그때 김영모가 발탁이 되었는데, 김영모가 임권택과 제작진에게 자신이 벽을 옆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자 모두들 기겁을 하며 "혹시 저 사람 마약을 한거 아닙니까?"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김영모는 그때까지 틀에 박히고 상투적인 액션을 벗어나 이후에도 한국영화 액션의 지표를 열었다고 평가받을만큼 화려하면서 박력넘치는 액션을 선보였다. 때문에 장군의 아들 성공에 김영모의 공은 아주 지대한 것임이 틀림없다. 제작진 중 한명은 "두꺼운 코트를 입은 상태에서도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날렵하고 화려한 동작을 선보인 그의 액션이 없었다면 장군의 아들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물론 부작용으로 집단 패싸움-> 주인공의 돌려차기나 뒤돌려차기-> 나가 떨어지는 악역들(...) 이라는 아주 전형적인 독창성 없는 패턴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최소한 장군의 아들 시절에는 그런 점도 굉장히 적었다. 액선은 지금 봐도 기가 막힌다. 철권을 눈으로 플레이하는 듯한 박진감 넘치는 합이 일품으로 발차기를 했을 때의 타격감이 멋있다~~투퍽!~~ 공중콤보도 가끔 보인다. 캐릭터에 맞게 다양한 액션도 볼 수가 있는데, 김두한의 날렵한 발차기, 쌍칼의 나이프 파이팅, 하야시 패거리의 일본도, 김두한 사단의 연장질(종로꼬마의 날렵한 액션과 김무옥[* 영화에선 김목이라고 한다.]의 유도 등등) 다양한 액션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셋째, 한국에서 [[쉬리(영화)|쉬리]]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사실상 유일무이한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다. 사실 이전에도 있기는 있었다. 60년대에 21세기 기준으로 50억 이상 정도의 작품들이 있었으나(예: <성웅 이순신>,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문제점은 한국의 '''일단 만들고 보자'''라는 생각 때문에, '''제작비 중 일부분은 스태프나 배우들의 치료비'''로 쓰였고, '''총을 쓰는 장면에서는 [[공포탄]] 대신 [[실탄]]을 쓰는 등, 차마 말도 못할 일들이 많았다.'''[* 이는 TV 전쟁드라마에서도 불거진 문제인데, KBS 드라마 <[[전우(드라마)|전우]]> 1975 및 1983년판의 경우 실탄까진 아니어도 폭발씬 촬영 때 경유나 시멘트 등을 써서 배우들의 등짝에 흉터까지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많이 줄어들었고, 이후 장군의 아들이 나올 때까지는 소규모, 독립영화 등이 만들어졌다.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40325_19370.html|당시 MBC 뉴스]] 다만 아쉬운 건 갈수록 흥행이 팍팍 내려갔다는 점. 1991년에 개봉한 2편은 서울 35만 관객을 모았다.[* 2탄은 작품성에서 평이 좀 갈린다. 전편의 아성을 받춰주지 못했다는 혹평이 개봉당시에 많이 나왔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2탄이야 말로 임권택 감독의 연출력이 왜 최고인지 알려준다.'와 '김두한 단독 이야기가 아닌 반대편에 서 있는 하야시와 김동회의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이자 이들의 고뇌를 담은 영화'라는 호평이 나오고 있다. 1탄 개봉당시 박상민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조금 가리워져 있었던 신현준과 이일재가 주목받은 편차이며 이 배우들이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3탄은 예나 지금이나 혹평인건 마찬가지고..] 그래도 2편의 경우엔 그 해 한국 영화 흥행 1위였다. 다만 그 해 외화들이 무더기로 흥행에 성공한 게 많아서 많이 묻혔다. 1990년 말에 개봉한 [[사랑과 영혼]]이나 [[늑대와 춤을]] 같은 영화들이 경쟁작이었으니...... 그리고 1992년작인 3편은 서울 17만 관객으로 가장 부진한 흥행을 거두며 결국 막을 내린다. 그 이유는 같은 시즌에 개봉한 [[최민수]]주연의 '결혼이야기'가 빅 히트를 기록하던 상황에서 개봉했었기 때문이었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대중문화계의 관심이 덜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90년대 작품답지 않게 후시녹음으로 배우들의 육성을 들을 수 없다는 것. 성우들의 목소리도 좋긴 했으나.. 1편이 대박을 거두자 당연히 아류작도 나왔다. [[시라소니]] 이성순을 모델로 한 시라소니도 서둘러 개봉했으나 서울 10만 관객으로 금세 잊혀졌다. 한편, 2008년 난데없이 [[임권택]] 감독이나 시리즈 판권을 가지고 있던 태흥영화와 별도로 김두한의 아들이자 영화사 파인트리엔터테인먼트의 김경민 대표가 난데없이 4편을 감독하겠다고 발표했다. 임권택 감독은 자신에게 말도 없이 만드는 것에 대하여 서운한 감정을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081106071510557?f=m|내비쳤고]] 태흥영화사는 새롭게 장군의 아들 리부트로 만들면 만들지, 왜 멋대로 4편이란 제목을 쓰냐면서 불쾌한 태도를 보였으며 김을동 의원(김경민과 어머니가 달라서 남남으로 지낸다)은 부정적으로 보았다. 이에 대하여 요즘에 4편이 나온다면 올드팬에겐 추억이 될지 몰라도 현대의 빠른 액션물적으로 젊은 관객들에게 과연 통할까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무엇보다 차라리 나온다면 2002년 당시 [[야인시대]]가 성공을 거둘 때라면 모를까 너무 늦었다는 평도 많았다. ~~2010년대에도 야인시대가 성공을 거두고 있긴 하지만 [[내가 고자라니|액션과 전혀 다른 방향]]이라서 논외...~~ 하여튼 이 4편은 '테러리스트', '나에게 오라', '김의 전쟁' 등을 감독한 김영빈이 메가폰을 잡는다고 하더니만 2009년 나올 예정을 넘어서 현재까지도 그 어떤 제작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으며 파인트리엔터테인먼트 영화사는 일체 다른 영화 제작한 게 없다. 다음 [[http://cafe.daum.net/pinetreeent|카페]]에서도 2009년 날짜로 장군의 아들 4 오디션을 언급할 뿐. 여러 가지 사정으로 4편은 나오기엔 사실상 엎어졌다. 여담으로 대사의 대부분은 [[후시녹음]]으로 나오는데 이를 위해서 몇몇 배역의 대사는 배우가 아닌 다른 성우들의 것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주인공인 김두한(박상민)의 목소리부터가 다른 성우의 목소리. 이는 박상민이 직접 고백하기까지 했다.[* 1탄의 경우 성우 [[백순철]]이, 2,3탄은 성우 [[장광]]이 맡았다. [[장광]]은 후에 영화 [[도가니(영화)|도가니]]에서 성우가 아닌 진짜 배우 역할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마찬가지로 김동회 역할의 [[이일재]]도 1, 2탄까지는 MBC 공채 6기 성우 [[이성(성우)|이성]], 3탄에서부터는 성우 [[김태연(성우)|김태연]]으로 바뀌어 나오기도 하였다. 하야시 역할은 일본인 성우가 직접 더빙했다.] 후시녹음과 관련해서는 꽤 재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박상민이 무릎팍도사에서 직접 밝힌 바로는, 박상민은 후시녹음 당일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이 더빙하는 줄 몰랐다고 한다.. 후시녹음일이 정해지고 박상민도 녹음실에 가서 대본 연습을 하는데 가만히 듣자하니 옆에 앉아 있던 백순철이 김두한의 대사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던 것. 박상민이 당황해서 "아니, 선배님! 왜 선배님이 제 대사를 연습하세요?"하고 백순철에게 묻자, 백순철 역시 당황하며 "응? 자네 얘기 못 들었나?" 대답했다고(백순철은 박상민이 자신의 연기에 어떻게 목소리가 입혀지는지 보려고 왔다고 생각한듯). 그제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성우로 대체한다는 걸 알아챈 박상민은 무척이나 씁쓸해했다는 후문. 아무리 신인 배우였다지만 이건 아무 통보도 안 해 준 감독의 잘못이 크다. 아니면 연기가 뭔지 직접 느껴보라고 충격 요법을 쓴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방식은 박상민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느냔 말도 있다. 그리고 이게 듣는 사람한테나 재미있는 이야기지 박상민이나 백순철한테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 후시녹음을 두고 현장녹음이 아니니 배우의 연기를 100%느끼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아쉽다는 의견이 있긴하지만 당시 박상민, 신현준, 이일재 등 배우들이 신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연기야 그렇다쳐도 이런 느와르 영화에서 어울리는 발성이 되지 않으면 분위기를 살릴 수 없다. 성우들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나 실제 배우들이 연기한 것에 목소리를 넣어주는 것이지만 그 효과는 이로 말할 수 없다. 목소리로만 따진다면 일반인은 물론 수준급 배우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성우들이다. 신인배우들의 연기와 유명 성우들의 후시녹음이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김두한을 사사건건 괴롭히는 조선인 형사가 등장하는데, 개봉 당시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2010년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겨우 야인시대의 미와 와사부로 정도만 기억하고 있어도 "이 사람 뭔가 김두한의 사정을 알고 나름 지켜주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근사근하고 친근하게 말한다. 거의 모범수가 만기 채우고 석방될 때 "다시는 이런데 오지 마라."며 등 두드려 주는 나이 많은 교도관처럼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실적인 악질 고등계 형사 같은 말투를 쓰지는 않는다.'''는 얘기로 이 캐릭터가 딱히 김두한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는 아니며, 오히려 미와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의 행동을 충분히 보여준다. 작중 행적을 보면 영화관 기도와 싸웠다고 1년 넘게 통돌림시키고, 동료의 애인을 위한 돈을 훔치기 위해 폭행 및 절도 범죄를 저지른 김두한을 이리저리 돌아댕기며 추궁, 의심했으며 축구 선수들과의 폭력 사건으로 잡혀온 김두한의 그곳(...)을 발로 가격하기도 한다. 심지어 김두한에게 구타당하여 반병신이 되었음에도 끝까지 김두한을 잡기 위해 그 소식을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말하자면 '''말투와 행동 사이의 갭이 쩔어준다.'''라고 할수 있다. 이 영화에서 무술감독을 맡은 김영모는 후에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에서 [[류(캡콤)|리우]] 역으로 출연하였고, 나중엔 합기도 도장 관장님이 되셨다고 한다. [[http://winter-love.tistory.com/m/post/30|스트리트파이터 리우의 근황]] 그리고 3편에서 나오는 3명의 [[일본 제국 육군]] [[일본 제국 육군/헌병|헌병]] 유단자들 역시 가두쟁패전을 열심히 봤다면 굉장히 낯익은 얼굴들이다. 첫 번째 상대는 가두쟁패전에서 빈슨(베가), 두 번째는 규리(가일, 1~4회 한정), 세 번째는 장지아프(장기에프) 역으로 나왔다. ~~왠지 강함의 순서는 거꾸로 된 것 같지만.~~ 12년 후 [[야인시대]]가 방영하면서 장군의 아들이 재조명되었다. 현재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유튜브에 무료공개하여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다. 단, 모바일 지원은 막혀있어 PC로만 감상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